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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러시아가 17일(현지시간)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이 가능하도록 보장한 '흑해곡물협정' 중단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협정 종료 시 식량안보가 취약한 국가들이 받을 타격을 알면서도, 식량난을 볼모 삼아 서방의 제재 완화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전화회의에서 자국과 관련된 요구 사항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며 "흑해곡물협정은 오늘부터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관련 사항이 이행되는 즉시 러시아는 협정 이행에 복귀할 것"이라고 여지를 뒀다.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가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전쟁터로 돌변한 흑해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곡물 수출선이 안전하게 다니도록 한 합의다.
유엔과 튀르키예는 지난 5월 17일 3번째로 60일간 협정 연장을 중재한 뒤 최근 추가 연장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 농산물과 비료의 수출을 보장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협정을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했고, 이날 일방적으로 협정 효력 중단을 선언했다.
서방은 현재 러시아 농산물 수출에 직접적인 수출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서방이 가하는 다른 제재로 인해 국제은행, 해운사 및 보험사와 자국 수출업자 간 거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는 러시아가 주장하는 어려움의 해소 대책으로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이 자회사를 만들어 이를 국제 금융네트워크에 연결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일축하고 "은행간 네트워크 폐쇄를 풀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고 밝혔다. 흑해 곡물협정을 지렛대로 삼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초래된 국제금융시스템 차단을 풀어보겠다는 심산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그간 언동으로 볼 때 협정 종료로 인해 촉발되는 글로벌 식량 가격 급등이나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이 겪게 될 식량 위기의 책임을 서방에 떠넘기려 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흑해 곡물 수출길이 막히면 유럽연합(EU)의 동유럽 회원국들도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런 점을 전략적으로 노린 것으로 보인다.
작년 전쟁 발발 이후 EU는 우크라이나 경제 지원 명분으로 흑해로 수출되던 우크라이나산 농식품 일부를 폴란드 등 동유럽 회원국을 경유하는 우회로로 돌릴 수 있도록 했다. 이 우회로를 이른바 'EU 연대 회랑'(EU Solidarity Lanes)으로 불렀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로 동유럽 국가에 밀려드는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급증하자 각국에서 농민 항의 시위가 확산하는 등 '집안싸움' 조짐을 보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러시아의 협정 종료 움직임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EU 연대 회랑을 통한 수출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지만, 당장 뾰족한 묘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러시아가 최근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 시도, 우크라이나의 반격 상황 등으로 불리한 전세를 뒤집기 위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에도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의 흑해함대를 공격했다면서 협정 참여를 중단했다 복귀했고, 지난 4월과 5월에도 러시아가 선박 검사를 거부하면서 협정 이행이 수일간 중단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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